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사외칼럼

[매경춘추] 외골수 vs 양다리

입력 : 
2020-08-04 00:04:02
수정 : 
2020-08-04 01:51:09

글자크기 설정

사진설명
"그는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일수록 꼭 양다리를 걸쳐온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문득 생전 고칠 도리가 없는 병이 든 것처럼 느꼈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의 한 구절이다. 구한말 개성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한양으로 가 고학생이 된 종상이 조선인인 자신이 서양 문명을 경험하고 돌아온 뒤 고뇌하는 장면이다. '양다리'라는 말은 비단 우리네 삶뿐만 아니라 경제, 사상, 교육 등에서 지금까지 부정적인 단어로만 쓰여 왔다.

수년 전, '1만 시간의 법칙'은 그야말로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시간을 노력해야 한다는 이 법칙은 성공의 법칙으로 간주됐다. 최근까지 이 법칙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교육 방식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전문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즉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폭넓은 사고의 소유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은 현대사회에서는, 이른바 '양다리를 걸치며' 두루 경험을 쌓은 제너럴리스트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19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문화를 바꿔놓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지닌 제너럴리스트가 적응이 빠를 뿐 아니라 여러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 항상 자신이 속한 세상과 다른 세계에 양다리를 뻗고 있는 사람은 변화에 민감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교육도 앞으로 전문가와 제너럴리스트를 함께 길러낼 수 있도록 달라져야 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그 분야에서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 속에서 활동할 제너럴리스트는 폭넓은 경험을 해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 여기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소양, 인생을 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미국 의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병원에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이며, 의료 종사자들을 최대한 빨리 '비전문화(unspecialize)'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정한 질병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제너럴리스트가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기 속에서 세상을 헤쳐 나갈 해답은 전문가의 깊은 통찰력이 찾아낼 수 있으며, 제너럴리스트의 넓은 시야는 그 해답을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뉴노멀 시대를 이끄는 것은 이제 '외골수' 전문가뿐만 아니라 '양다리' 제너럴리스트, 두 서로 다른 리더들이 함께해야 할 몫이라는 뜻이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